Depiction of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하였다.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사(烏合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 절에서 선(禪)을 널리 알리어 절이 점점 크게 번성하게 되자, 왕은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며, 진성여왕 2년(888)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리었다. 절터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하였다. 얼굴의 일부분이 깨져 있는 거북은 머리 위쪽에 둥근 뿔이 나 있고, 뒤로 째진 눈에는 눈썹이 휘말려 있으며, 입은 마치 불을 내뿜으려는 기세이다. 등에는 선명한 이중의 육각무늬를 새기고, 중앙에는 제법 굵직한 구름무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구름무늬 위로는 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높게 마련하여 각 면을 장식하였다. 길다란 비몸은 앞면에만 비문을 새기고, 위쪽 양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놓았다. 맨 위에 올려진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두르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서로 뒤엉킨 장면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는데, 힘찬 용틀임과 웅장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앞면에는 받침돌의 거북머리와 같은 방향으로 용머리가 툭 불거져 나와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진골이던 낭혜화상의 가문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6두품의 신분으로 낮아지는 대목도 나타나 있어 당시 신라골품제도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썼으며, 비를 세운 시기는 적혀 있지 않으나, 낭혜화상이 입적한 지 2년 후인 진성여왕 4년(890)에 그의 사리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이 때 비도 함께 세웠을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 중에서 가장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솜씨가 작품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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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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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 is a tower monument in memory of Monk Nanghyehwasang Muyeom in the United Silla Era, standing at the site of Seongjusa Temple. Nanghyehwasang is a descendant in the 8th generation of King Muyeol, and was born in the 2nd year (801) of King Aejang and entered the monkhood at his 13 years old. In the 13th year (821) of King Heondeok, he went over to Tang Dynasty and achieved spiritual enlightenment through discipline. And in the 7th year (845) of King Munseong, he came back home and became the chief monk of Ohapsa Temple that used to be at Ungcheon (now Boryeong), spreading Zen. As the temple came to prosper, the King gave the temple the name of "Seongjusa Temple". In the 2nd year (888) of Queen Jinseong, he passed into Nirvana at Seongjusa Temple at his 89 years old, and the Queen gave him "Nanghye" as his posthumous name and the tower "Baegwolbogwang". The monument standing at the northwest in the temple site has the figure in which the monument body stands on the turtle-shaped supporting stone, and the monument head in on the body. The supporting stone was seriously damaged, buried under the soil, but it was repaired in 1974. Part of turtle's face is broken, and a round horn is on the turtle's head. The eyebrows are rolled into the eyes cut open backward, and the mouth seems to force out fire. The turtle shell of its back has clear double hexagonal design, and fairly thick cloud designs are realistically expressed in the center. On the cloud designs, there is the square monument seat for monument body, and its each side is decorated. The inscription is carved only on the front face of the long monument body, and both corners of the upper part of the front face are cut round. Lotus flower carvings surround the monument head on the top at its lower part. At its upper part, the figure of entangled clouds and a dragon is three-dimensionally carved, and it brilliantly expresses energetic belch of a dragon and magnificent spirit. At the front face, the dragonhead is interestingly prominent in the same direction of the turtlehead of the supporting stone. The inscription contains the achievements of Nanghyehwasang's in detail. It was composed by Choi Chiwon, and written by his cousin Choi Ingon. It includes the content that Nanghyehwasang's family had belonged to Jingol, but in his father's generation went down to the sixth-du class. So the inscription is very valuable in the study of golpum system (a class system) in Silla Era. The date of building the monument is not recorded, but since it has the record that the tower for his sarira was built in the 4th year (890) of Queen Jinseong, that is, two years after Nanghyehwasang had passed into Nirvana, it is guessed that the monument might be set up at the same time. The monument is the largest in the scale among those built in Silla Era. And splendid and beautiful carving skills are greatly exercised in the work, so it can be said that the monument is the best among those in late Silla Era.terestingly prominent in the same direction of the turtlehead of the supporting stone. The inscription contains the achievements of Nanghyehwasang's in detail. It was composed by Choi Chiwon, and written by his cousin Choi Ingon. It includes the content that Nanghyehwasang's family had belonged to Jingol, but in his father's generation went down to the sixth-du class. So the inscription is very valuable in the study of golpum system (a class system) in Silla Era. The date of building the monument is not recorded, but since it has the record that the tower for his sarira was built in the 4th year (890) of Queen Jinseong, that is, two years after Nanghyehwasang had passed into Nirvana, it is guessed that the monument might be set up at the same time. The monument is the largest in the scale among those built in Silla Era. And splendid and beautiful carving skills are greatly exercised in the work, so it can be said that the monument is the best among those in late Silla Era. (en)
  •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하였다.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사(烏合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 절에서 선(禪)을 널리 알리어 절이 점점 크게 번성하게 되자, 왕은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며, 진성여왕 2년(888)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리었다. 절터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하였다. 얼굴의 일부분이 깨져 있는 거북은 머리 위쪽에 둥근 뿔이 나 있고, 뒤로 째진 눈에는 눈썹이 휘말려 있으며, 입은 마치 불을 내뿜으려는 기세이다. 등에는 선명한 이중의 육각무늬를 새기고, 중앙에는 제법 굵직한 구름무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구름무늬 위로는 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높게 마련하여 각 면을 장식하였다. 길다란 비몸은 앞면에만 비문을 새기고, 위쪽 양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놓았다. 맨 위에 올려진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두르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서로 뒤엉킨 장면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는데, 힘찬 용틀임과 웅장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앞면에는 받침돌의 거북머리와 같은 방향으로 용머리가 툭 불거져 나와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진골이던 낭혜화상의 가문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6두품의 신분으로 낮아지는 대목도 나타나 있어 당시 신라골품제도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썼으며, 비를 세운 시기는 적혀 있지 않으나, 낭혜화상이 입적한 지 2년 후인 진성여왕 4년(890)에 그의 사리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이 때 비도 함께 세웠을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 중에서 가장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솜씨가 작품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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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ele accompanying pagoda of Buddhist priest Nanghyehwasang (en)
  •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普光塔碑
  •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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